카테고리 : 치군's 스크랩
2007/09/29 [MSL] B조 광통령이여 영원하라.. -_-/ [3]
2007/07/19 한편 리에씌는.... [3]
2007/07/19 나나씌 귀엽습니다..ㅠ_ㅠ)b [2]
2007/04/28 이 스크랩으로 대신합니다.
# by | 2007/11/16 21:58 | 치군's 스크랩 | 트랙백 | 덧글(3)

# by | 2007/09/29 23:18 | 치군's 스크랩 | 트랙백 | 덧글(3)


# by | 2007/07/19 22:16 | 치군's 스크랩 | 트랙백 | 덧글(3)

# by | 2007/07/19 22:09 | 치군's 스크랩 | 트랙백 | 덧글(2)
그 후에도 '한나시카'라는 러시아식 애칭으로 제 이름을 바꿔 부르시며 예뻐해 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믿기지 않습니다. 힘들게 음악을 하신 분이라 마음이 더 아픕니다. 고국 러시아의 정치 상황은 음악가를 내버려두지 않았죠. 구소련 시대 대표적 반체제 인사인 솔제니친과 사하로프를 공개적으로 옹호해 파리로 추방당하신 선생님은 저에게 "연주자의 길을 걷다 보면 비방과 방해에 시달릴 수 있지만 음악을 놓으면 안 된다"고 일러 주셨잖아요. "연주자는 돌을 맞아가면서도 연주를 끝까지 마쳐야 한다"는 말은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박해를 받은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에게 들으신 말씀이셨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인 1989년 11월 12일 로스트로포비치는 현장으로 달려가 즉석연주를 했다. 연주곡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인류애와 역사적 사명감이 담긴 이 모습은 전세계에 TV 생중계를 통해 전해졌다. [로이터=뉴시스] 첼로 곡만 120여곡을 초연하시고 지휘자로도 열정적으로 활동하시는 모습은 제게 큰 자극이 됐습니다. 워싱턴, 모스크바, 뉴욕으로 제가 레슨을 다닐 때면 늘 같은 곡을 매번 다르게 연주하도록 주문하곤 하셨죠. 손가락 번호도 바꾸고, 템포도 다르게 해보고. 어린 저에겐 참 힘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연습해보면 네가 어떤 음악을 원하는지 알게 될 거다"라는 말씀은 적중했습니다. 저의 첫 데뷔 앨범을 선생님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와 내고 저는 부쩍 성장했습니다.
선생님께 정식으로 레슨을 받은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제가 14살 때, 선생님은 "오늘이 마지막 레슨"이라고 하시며 "이제 음악의 열쇠를 줬으니 네가 문을 열어라"고 하셨습니다. 그 후에는 제가 선생님 계신 곳을 쫓아가 "당장 첼로 들고 가겠다"고 해도 받아주시지 않으셨죠. "스승 없이 음악을 해야 진짜 성숙할 수 있다. 이제 가르칠 것을 다 가르쳤다"고 하시면서요. 하지만 그 후에도 제 연주에 와서 들어주시고 집으로 초대해 맛있는 초콜릿도 주셨죠.
4년 전 뉴욕에서 뵈었을 때는 저를 번쩍 드시면서 "너무 가볍다. 밥 많이 먹어야겠다"고 하셨죠. 그런데 지난달 크렘린궁에서 푸틴 대통령이 베푼 생일잔치에 참석하신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야위신 모습을 처음 본 저는 한동안 마음이 아팠답니다.
선생님, 지금 저는 선생님과 처음 만났던 파리에 있습니다. 유럽 연주를 막 마쳤습니다. 장례식에라도 참석하고 싶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네요. 다음 무대에 설 때는 선생님 생각만 날 것 같습니다.
# by | 2007/04/28 12:58 | 치군's 스크랩 | 트랙백 | 덧글(0)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